허보리 BOREE 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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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보리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허보리는 제주 자연에서 출발한 식물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도시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경쟁하듯 자라나는 식물들의 모습에서 인간 삶의 단면을 발견하며, 무작위로 얽히고 흔들리는 풀과 나무의 몸짓을 치열하면서도 역동적인 ‘춤’의 이미지로 인식한다. 이러한 장면을 응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면이 고요해지는 경험을 하며, 이를 ‘풀멍’의 상태로 정의하고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의 회화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전면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면이나 물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두텁게 축적된 물감과 거친 붓질이 드러난다. 이는 평온해 보이는 삶의 표면 이면에 존재하는 치열한 생의 에너지를 드러내며, 반복되고 중첩된 붓질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하나의 조화로운 화면으로 수렴된다.
회화와 더불어 패브릭 설치 작업 〈하얀숲 2〉에서는 제주 곶자왈 숲의 이미지를 전통 직물 ‘소창’으로 구현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의례부터 일상까지 사용되어 온 소창을 활용해 가지와 잎을 만들고, 감침질을 통해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숲의 덩어리를 구성한다. 이 과정은 반복과 축적의 시간을 시각화하며, 회화에서의 물감 축적과 긴밀하게 호응한다.
이외에도 매화의 폭발적인 개화 에너지를 포착한 대형 추상 작업, 메밀밭과 무밭 연작 등 제주 풍경을 바탕으로 한 식물 추상 회화를 선보이며, 규칙적인 배열과 반복적 행위 속에서 발견되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통해 ‘반복과 생존’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허보리의 작업은 자연의 재현을 넘어, 치열하게 흔들리면서도 끝내 살아내는 존재들의 에너지에 대한 기록이자 인간과 식물이 공유하는 생의 의지에 대한 은유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