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 Kim 김한나
May 12 - June 28, 2026
이번 전시의 제목 《싹싹하게》는 '싹'과 '싹싹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의 첫 순간인 '싹'과, 타인을 향해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가는 태도인 '싹싹함'. 작가는 이 두 개념을 하나의 감각으로 엮어, 생명이 자라나는 방식과 이를 대하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함께 묻는다.
이번 전시에서 김한나는 일상의 식탁과 밭의 풍경에서 비롯된 감각을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농부인 아버지가 매일 가꾸는 밭에서 수확된 채소를 통해 계절의 흐름을 감각해온 작가는, 자신이 먹는 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오래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삶의 방식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상추를 쌈으로 먹고, 배추를 저장하며, 부추의 향으로 계절을 느끼는 일상은 단순한 식사의 경험을 넘어, 시간과 생장이 축적되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를 "나는 계절을 먹고, 아버지는 계절을 만든다"는 말로 설명하며, 그 사이에서 스스로 자라는 법을 배워왔다고 말한다. 씨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고, 다시 비워두는 밭의 순환 구조는 반복이 결코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토마토가 잘되지 않는 해가 있고, 생강이 유난히 잘되는 해가 있듯, 매번 조금씩 어긋나는 결과 속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변화야 말로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이자,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감각으로 작용한다.
“나는 여덟 살 때부터 생선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입안에서 오래 씹다가 끝내 삼키지 못했다.
목구멍 어딘가에 썩은 바다가 걸려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 이후로 나는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을 나누며 살았다.
고기와 치즈는 먹었고, 우유도 마셨다. 완전히 바뀌지 않은 상태를 오래 유지했다.
십 년 전쯤 그 상태가 조금 움직였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기준이 달라졌다.
채식을 시작한 이후 몸이 가벼워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힘에 여백이 생겼다.
시금치가 흙 위에 딱 서 있을 때처럼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게 되었다.”
- <싹싹하게> 작가노트 중 -
이 감각은 작업의 재료와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는 작업실에 쌓여 있던 종이들—낙서가 남은 것들, 모퉁이만 접힌 것들—을 다시 손으로 구기고 쥐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형태를 만들어낸다. 씨앗을 움켜쥐듯 손 안에서 압축되고 펼쳐지는 이 과정은 생명이 자라나는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그 끝에서 매번 조금씩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토끼'다. 김한나의 작업에서 토끼는 20여 년간 함께해온 핵심적인
존재로, 대학 시절 '토끼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 이미지는 작가 자신의 이름을 딴 '한나'라는 인물과 함께 화면 위에 등장한다. 이들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며 작가의 감정과 시간을 투영하는 또 하나의 자아이자 동반자로 기능한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서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감정을 조용히 투영하게 만든다.
《싹싹하게》는 완전한 변화나 뚜렷한 성취를 향한 서사보다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이어지는 변화와 감각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안한다. 싹이 돋아나듯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지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며, 각자의 속도로 삶을 가꾸어 가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